이런 아이들의 아버지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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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아닐까.

인도 아이들 귀여운 거야 이미 내외로 정평이 나있는 사실이지만(어느 나라 아이들이 귀엽지 않을까만은), 이 사진에 담긴 아이들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노라면 나보다 어릴 것이 분명한 꼬마들의 아버지가 부럽기 짝이 없다. 내게도 이런 딸들이 있다면 내 목숨 깎아 그들의 밥을 만들어줘도 아깝지 않을 듯하다. 나, 늙고 있다. 분명.

위로부터 코발람비치 인근, 뭄바이 골목, 트리밴드럼 시내에서 S형 카메라 앞에 선 인도 꼬마숙녀들이다. S형은 2006년 5월 내 인도여행에서 잠시 만난 인연으로 요즘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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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해서 공짜 비행기 타고 싶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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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여행 한번 가보겠다고, 쪽을 팔면서까지 이런 걸 썼는데 지원에서 탈락했다. 이젠 아이들에게까지 밀리는 마흔 살 조로한 사내. 시인이고, 책을 4권 출간했으며, 기자질을 10년 한 건 정말 이 땅에서 좆도 아니구나. 허탈하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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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사야 군도(群島)의 푸른 보석 세부-보홀을 여행할 스토리에디터 선발에 지원합니다.

제 이름은 홍성식, 나이는 만39세(서른아홉과 마흔은 어감이 많이 다르죠). 지난해까지 10년 6개월 가량 온-오프라인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했습니다. 오래 맡았던 부서는 문화부였고요. 지금은 <달과 6펜스>의 주인공처럼 향후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시간 넘쳐나는 백수라는 이야기죠.


2005년에 문예지 <시경>을 통해 등단했고, 그해 시집 <아버지꽃>을 출간했습니다. 이후 해마다 한 권씩 쯤 책을 썼고요. 영화에세이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작가 인터뷰모음집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초등학생용 교육도서 <내 인생을 바꾼 책> 등.


현재 문학-여행-영화를 주요 테마로 하는 2개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욕망하는 인간의 世間雜說(http://blog.ohmynews.com/poet6/ - 2006년 6월 개설 누적방문자 228만1천명)과 ’멀리서 먼 곳으로 몸이 아프다‘(http://poet6.tistory.com/ - 2007년 10월 개설 누적방문자 40만3천명)가 그것입니다.


두 블로그 중 ‘멀리서 먼 곳으로 몸이 아프다’를 통해서는 지난해 3월 온필이 위드블로그와 함께 주최한 ‘7107개의 섬나라- 필리핀 여행 이야기’ 캠페인에 참여했었고, 블로깅한 내용(http://www.withblog.net/campaign/posting_info.php?ci=93)이 ‘베스트 글’로 뽑혀 거금(?) 5만원을 상금으로 받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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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인도, 몽골, 라오스, 캄보디아, 일본, 베트남, 태국(3회) 등을 여행했고, 필리핀은 2007년 가을에 혼자서 배낭여행으로 12일쯤, 올해 봄엔 엄마와 함께 에어텔로 보라카이를 다녀왔습니다. 한번 여행한 곳은 어지간하면 다시 가지 않는 게 내 여행 스타일인데, 태국과 함께 필리핀은 2번 이상 방문했군요. 그만큼 매력이 있는 곳이란 이야기겠죠.


사실 2007년에 내 필리핀 여행 코스가 ‘마닐라-일로일로-바콜로드-두마게테-보홀-세부-보라카이-마닐라’였는데, 그 기간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보홀과 세부에 머물던 5일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부와 보홀에 다시 간다면 그때 못해봐서 아쉬웠던 것들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번 ‘세부-보홀 스토리에디터 선발’에 지원하게 된 이유도 그것 때문이죠.


앞서 많은 분들이 작성한 스토리에디터 지원서를 읽었습니다. 저보다 훨씬 알차고, 충실한 내용의 여행을 준비한 분들이 많더군요. 해서, 지원을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주최사가 비용을 부담해 보내는 여행이라면, 이벤트를 주최하는 온필도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을 테고, 그 기대 중의 하나가 ‘홍보’이기도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을 때는 월평균 8~9만 명(최근 3개월간은 월평균 2~3만 명)이 방문하는 내 블로그가 ‘홍보’ 측면에서는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주지 않을까라는 오버센스를 해보는데, 어떨지요? 또한, 책을 4권 냈고, 기자를 10년 했으니 6편의 스토리(여행 에피소드) 작성은 무난히 해낼 수 있을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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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하게 하려했던 소개가 장황해졌습니다. 자화자찬으로 보일 수도 있어 살짝 낯 뜨겁기도 합니다. 이제 본론으로 가죠.


‘메트로 마닐라, 루손, 민다나오, 팔라완, 비사야 군도’로 크게 구분되는 필리핀에서 세부와 보홀이 속해있는 비사야 군도 권역은 수천 개의 섬들이 오밀조밀 빚어내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지역입니다. 사파이어빛 바다와 눈부신 백사장, 거기에 친절하고 잘 웃는 사람들. 또한 저렴하고 이국적인 먹을거리로 여행객들을 매료시킵니다. 나 역시 거길 여행했을 때 그 매력에 흠뻑 빠졌었죠.


그렇다면 세부와 보홀에선 무얼 해야 할까요?


한국의 관광호텔 가격이면 머물 수 있는 샹그릴라, 마리바고 블루워터 등의 막탄 섬 리조트 선베드에 편안히 누워 회색빛 도시에 찌든 몸과 마음을 쉬게 해주는 것? 당연히 해야겠죠. 옥빛으로 반짝이는 투명한 바다를 가르며 방카를 타고 달리는 아일랜드 호핑? 빼놓으면 안 되겠죠. 세부 시내의 인기 있는 클럽이나 바에서 가격대비 맛 최고인 필리핀 맥주 산미구엘을 마시며 춤추는 즐거움? 안 하면 섭섭하죠. SM이나 아얄라몰에서 쇼핑을 하고, 유럽풍의 성당과 건축물을 둘러본 후 스파와 마사지로 지친 다리와 어깨를 풀어주는 것? 이것 역시 좋지요. 


이뿐이겠습니까. 보홀에선 유람선을 타고 느리게 로복강을 따라가며 울퉁불퉁 재밌게 솟아오른 초콜릿힐을 보고, 귀엽고 희귀한 안경원숭이와 함께 사진도 찍어야죠. 저물녘엔 아름다운 알로나 비치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식탁에 촛불을 켜고 랍스터를 먹는 즐거움까지 느껴야겠지요. 다음 날 아침엔 스킨스쿠버와 다이빙도 빼놓으면 안 될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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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세부-보홀 여행은 위와 같이 진행되는 게 일반적인 루트이고 코스입니다. 나쁠 건 없습니다. 다녀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밌어했고 만족도가 높았던 것이니, 그 뒤의 관광객들도 이 코스를 답습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4일 내지 5일의 짧은 여행이니 다른 걸 해볼 여력도 별반 없을 듯 하구요.


하지만, 남들 다 하는 것만 하고 돌아오면 뭔가 빠진 듯 섭섭한 것도 사실이죠. 그래서, 전 위에 언급한 즐거움을 누리는 중간에 하루나 이틀쯤 시간을 내 즐겨봤으면 하는 ‘새로운 여행 방법’ 3가지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주어진 시간상 셋 다를 할 순 없겠고, 자신의 취향에 맞게 하나라도 해보는 건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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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제안- 발리카삭 혹은, 파밀라칸 섬에서 야영하기


보홀 알로나비치에서 방카를 타고 40~50분이면 가닿을 수 있는 섬이 2군데 있습니다. 발리카삭과 파밀라칸인데요, 2007년에 갔을 때 발리카삭에서 한나절을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30분이면 섬 전체를 다 돌아볼 수 있는 그곳의 풍광과 사람들이 너무 좋아 돌아와야 할 때가 됐는데도 나오기가 싫더라구요. 해서, 이번에 간다면 세부의 대형 쇼핑센터에서 저렴한 텐트를 하나 구입해 섬에서 하룻밤을 자보고 싶습니다. 여행이란 풍경을 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끔씩은 돌고래가 무리지어 나타나 눈을 즐겁게 해준다는 파밀라칸과 발리카삭 섬의 바다가 보이는 해변에 텐트를 치고, 쏟아지는 별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는 것.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거기에 너무나 순박하고, 선량한 섬 주민들과 맥주나 탄두아이(필리핀 럼) 한잔을 나누며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도 서툰 영어로 주고받고요. 한국에서 사탕이나 캐러멜을 좀 챙겨간다면 섬 꼬마들에게 ‘여름날 나타난 산타클로스’로 환영받을 수도 있겠죠. 이건 모험을 즐기는 분들이 좋아할만한 제안입니다. 여자분들만의 여행이라 밖에서 자는 게 걱정스럽다면 밤이 아주 깊어진 이후엔 텐트를 걷고 섬에 있는 숙소에서 잘 수도 있겠죠. 발리카삭엔 필리핀 정부에서 운영한다는 방갈로가 있습니다. 파밀라칸은 발리카삭보다 큰 섬이니 당연지사 그런 숙박시설이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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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제안- 라푸라푸 추장의 흔적 찾아보기


내 경험에 한정된 것이겠지만, 2차례의 필리핀 여행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오랜 시간 자신들을 지배했던 스페인에 대해 그다지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한국과 필리핀은 똑같이 식민지 체험을 겪었죠. 20세기 초반 일본에 강점당했던 우리. 아직까지도 많은 수의 한국인이 일본을 ‘약탈자-폭압자’라고 규정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내가 만난 필리핀 사람들은 스페인을 ‘발달한 서구문물과 합리적 제도를 전파해준 나라’ 정도로 생각하고 있더군요. 사실 좀 놀라웠습니다. 그 놀라움은 ‘필리핀인들의 의식 저변에 왜 그런 식민지관(觀)이 형성됐을까’란 궁금증으로 이어졌구요.


세부에는 필리핀을 스페인의 식민지로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페르디난드 마젤란을 기리는 조형물과 마젤란에 저항해 자기 민족의 땅을 지키려했던 라푸라푸 추장의 동상이 함께 만들어져있습니다. 이는 어찌 보면 서울 한복판에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의 동상이 나란히 서있는 것과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아이러니죠. 이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의 근거를 찾아보는 건 의미 있어 보입니다.


라푸라푸 추장의 생애와 그가 마젤란과 전투를 벌인 장소, 필리핀의 지식인과 서민의 의식 속에서 라푸라푸가 점하는 위치 등을 잘 알고 있는 가이드(사학자라면 더 좋겠죠)와 함께 16세기 역사의 현장을 꼼꼼하게 돌아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을 줄 것 같지 않습니까? 이는 ‘역사를 아는 것이 그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는 지름길’이라고 믿는 학구적인 여행자에게 어울리는 제안입니다. ‘서구의 식민지배가 가져온 빛과 그림자’에 대해 사전에 공부를 하고 필리핀을 찾을 분이라면 영국의 탐험가이자, 해군 제독이었던 제임스 쿡을 세밀하게 추적한 <푸른 항해>(토니 호위츠 저 ․ 이순주 역)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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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제안- 장인의 손때가 묻은 세부의 수공 기타와 만남 갖기  


기계를 통한 대량생산-대량소비가 일상화된 나라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수공’(手工)이란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단어입니다. 느리고도 꼼꼼하게, 또한 정성을 다해 세밀하게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힘겹죠. 하지만, 그 힘겨움 탓에 수고로움이 빛나는 일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세부에서 수공으로 유명한 건 총과 기타라고 들었습니다. 수제 총이 어떤 형태인지 보지 못했지만, 근사할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걸 사고파는 건 엄연한 불법. 여행가서 불필요한 위험까지 감수할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기타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수공 기타 작업장을 찾아가 오랜 시간 장인의 손길을 거쳐 만들어진 기타를 만나보고, 서투르게나마 연주해보는 것. 세부가 아니면 느끼기 힘든 즐거움이겠죠. 가격 또한 그다지 비싸지 않다니 여력이 된다면 하나 구입해도 좋겠구요.


또한, 기타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근처에는 분명 이를 연주하는 사람도 있을 터. 수공 기타 작업장 인근 허름한 로컬바에서 수제 세부 기타를 튕기며 존 덴버나 밥 딜런의 올드 넘버를 노래하는 가수를 찾아보는 것도 분명 흥미로울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 아시죠? 필리핀인들은 아시아에서 영어 해독력이 가장 높은 사람들이고, 필리핀 커버밴드(혹은, 카피밴드)가 부르는 컨트리나 포크는 제법 매력이 있어요. 그 특유의 필리핀식 영어발음을 듣는 것도 유쾌하고요. 이건 ‘밥 없이는 살아도 음악 없인 못 살아’라는 슬로건을 가지신 분들, 또 관광객들로 가득 찬 세련된 클럽보다는 허름한 현지 카페에서 느긋함을 즐기려는 이들에게 어울릴 제안이겠죠.


이상이 ‘세부-보홀 여행’에서 제가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들입니다. 글을 쓰는 동안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 것 같아 잠시라도 즐거웠네요. 이 즐거움이 상상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기쁨으로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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밋밋하고 지겨운 동어반복 <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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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여름에는 개장국, 겨울에는 도루묵찌개”처럼 세 번 네 번 주절주절 반복에 강조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세상 모두는 부자의 편이다.


예수도 부처도 마리아도 부자의 편이고, 목사도 신부도 중(僧)도 부자의 편이고, 법도 제도도 규범도 부자의 편이고, 바람도 햇살도 달빛도, 심지어 짖어대는 뒷집 강아지새끼도 부자들 편이다. 여기에 이제는 어울리지 않게 고인이 돼버린 김남주 시인의 이런 진술을 덧붙여볼까?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로부터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경찰을 만들고, 법원을 만들고, 감옥을 만들었다.” 오래 생각해보지 않아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이정재와 전도연이 주연한 임상수의 신작 <하녀>를 본다. 악랄하고, 추잡하고, 더럽고, 교활한 부자들에 의해 죽음에 이르는 멍청하고, 우매하고, 덜 떨어진 가난한 한 여자를 본다.


이것은 조악한 ‘계급 동류의식’ 탓일까? 겨우겨우 밥술 뜨고 사는 가난한 나는 슬퍼진다. 옆자리에 앉은 가난한 아줌마들 역시 낮은 한숨으로 서러움 비슷한 걸 드러낸다. 영등포 롯데시네마 5월 27일 오전 10시 30분 조조 관람 풍경이다.


<하녀>는 1960년에 만들어진 김기영의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 한 것이다. 자그마치 50년의 간극. 눈물 콧물 짜대며 부잣집 여비(女婢)로 들어가 그 부잣집 남자와 몸을 섞고, 부잣집 여자들의 노여움과 시기에 불행을 맞는다는 설정은 우습게도 세월을 뛰어넘어 찍어놓은 판박이처럼 닮았다. 영화도 현실도 변하지 않았다.


이제는 ‘전설’이 된 가객 김지하는 새파란 30대 시절 이렇게 노래했다. “간다 간다 몸 팔러 간다/서러운 서울길 몸 팔러 간다...” 운운.


무서워라. 그 김지하기 칠순이 된 지금도 가난한 자들은 팔 게 몸밖에 없다. 국민학교 문턱도 못 가보고 깡촌에서 상경해 식모를 하거나(1960년판 설정), 번듯하게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재벌집 유모로 들어앉거나(임상수판 2010년 설정). 이 둘 사이엔 형식적 차이가 있을 뿐, 내용적 변별성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값 싼 노예인가, 좀 덜 싼 노예인가의 구분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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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사이트 네이버나 다음(야후를 말해주지 않으면 서운해 하려나?)에 제목만 쳐 넣고 엔터 키를 누르면 쫙쫙 빠져나오는 <하녀>의 줄거리를 중언부언 하는 건 장마철에 물 뿌리고 마당 청소하는 것 마냥 우스운 꼴. 하여, 생략한다.


“감옥과 병원, 학교는 지독하게도 닮아 있다”고 한 게 에른스트 블로흐였나, 아니면 미셀 푸코였나? 어쨌건 임상수의 <하녀>는 이 당연명제에 딱 한 줄을 덧붙이고 있다. “부잣집도 마찬가지”라고.


사실 <하녀>는 썩 좋은 영화는 아니다. ‘부자들의 악덕에 눈물 흘리는 빈자’라는 공식은 너무나 오래된 레토릭이고, 낡은 수사다. 이걸 영화적으로 완성도 있게 소화시키기 위해선 높은 내공이 필요한데, 우리가 전작 <그때 그 사람들>과 <오래된 정원>에서 이미 확인했듯 임상수는 그런 공력이 없다.


임 감독이 재주를 보이는 ‘일상의 미세한 묘사’만으론 역사와 자본이라는 대용량 카테고리를 해석해내기가 사자를 사냥하는 스프링벅을 보기만큼 어렵다. ‘거대 서사’는 임상수의 전공과목이 아니다. 이게 그의 협량한 세계인식 수준 탓인지, 그릇 탓인지는 나도 모를 일.


지지부진하고 결말 뻔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과 더불어, 조연인 서우(재벌집 젊은 마나님 역할)의 갓 말을 배운 아이들이 동화책 읽는 듯한 대사 처리와 자기 연기의 반복재생산에 머물고 있는, 해서 더 이상 발전 없는 전도연의 밋밋한 존재감도 영화의 격을 떨어뜨린다.


찧고 까부르던 각종 매체가 줄줄이 갈겨쓰던 “놀랍고, 충격적인 베드신”도 사실 없다. 성교 중 주고받는 대사가 야하기 짝이 없다던데, 내가 보기에 그 정도 말들은 얌전한 은행원과 건설회사 경리아가씨가 결혼해서 살 섞을 때도 쓰는 일상적인 ‘침대 위 용어’다. “빨대처럼 쭉 빨아 달라”는 게 뭐가 ‘야하기 짝이 없’단 말인가. 열 살짜리도 포르노를 보는 21세기에.


다 아는 이야기의 반복학습에다 고만고만한 배우들의 심란한 연기, 거기에 눈요기를 바라고 간 관객들까지 배신(?)하는 무덤덤한 화면, 무슨 이유로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흔들어놓은 것인지 이해하기 힘든 마지막 장면까지. <하녀>는 범작(凡作)에 그치고 있다. 참, 좋은 영화 만들기란 이토록 힘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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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 영화가 단 하나의 미덕도 없는 건 아니다. 앞서 이야기 한 바 ‘가난한 자의 불행은 부자들의 탐욕과 비인간성에서 잉태 된다’는 사실은 가르치고 있으니. 그런 이유에서 <하녀>는 다소 조잡하고 장황하지만 반자본주의 교과서까지는 아니고, 참고서로는 역할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등급을 중학생 관람가로 조정해야하지 않을까?


하나만 더. 영화를 보니 전도연의 젖꼭지는 크고 검더라. 전도연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그녀는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난, 작고, 연한 빛깔의 유두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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